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파견직으로서 회사 내에서 책임져야 할 일같은 건 사실 없는 것 같다. 나는 심지어 만으로 한 달이 다 되어가는 지금 시점까지도 온전히 맡아서 하고 있는 일이 없다. 회사에 출근해서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도 혼자 현타를 많이 느낀다. 사람을 뽑아놓고 왜 일을 안 시키는지, 설마 알아서 나가라는 뜻인가..? 하는 엉뚱한 생각도 자주 한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서 돈 번다고 생각하면 조금이나마 즐겁게 앉아있을 수 있으니 여러분도 시도해보길 바란다.(?)
회사 내에서의 인간관계 때문이든, 일이 너무 싫어서 짜증날 때에는 난 택배 일용직 아르바이트를 했던 시절을 떠올리곤 한다. 새벽에 실려나가서 쎄가 빠지게 일하고 오밤중에 집에 들어오면서도 하루에 6만원밖에 챙겨오지 못했던 시절을.. 그렇게 고생했던 걸 생각해보면 지금은 사람들때문에 고생해도 그 때보단 백배 천배 낫다는 생각이 들면서 괜찮아진다.
어쨌든 회사 내에서 파견직을 맡고 있는 나로서는 그 안에서의 자리를 견고히 할 만한 상황에 처한 것은 확실히 아니다. 하지만 회사 밖에서의 이야기는 좀 달라지는 것 같다. 내 자리가 파견직이든 뭐든 회사 내에서 배울 수 있는 것들에 한계가 있다는 생각은 아직은! 들지 않는다. 사내 연구소에서 발행하는 레포트를 전부 읽을 수 있고, 사내 세미나에도 참석할 수 있고, 회사 외부에서 진행하는 행사에도 회사 소속으로 참석할 수 있다. 게다가 사무실에 앉아서 게임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에 증권사 레포트나 뉴스를 많이 읽게 되는데 그러다보면 자동으로 세상 물정에 밝아지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이게 바로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과정이 아닐까.
우리가 듣는 모든 것은 의견일 뿐, 사실이 아니다. 우리에게 보이는 모든 것은 관점일 뿐, 진실이 아니다.
Everything we hear is an opinion, not a fact. Everything we see is a perspective, not the truth.
회사 안에서는 내가 견고히 지켜야 할 자리같은 것도 없고, 회사 내에서 인식하는 나는 처음이나 지금이나 아무 차이가 없겠지만, 그 밖에서 바라보는 나나, 내가 바라보는 나는 고작 1달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아주 많은 것이 달라졌음을 느낀다. 다른 사람이 인증해 준 것은 아니지만, 난 확실히 아는 것도 많아지고, 사고의 바운더리가 넓어졌다. 내가 외부인으로서는 절대 알 수 없었을, 그저 회사 주변을 돌아다니는 행인으로서는 알 수 없었을 세상을 알게 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 세상을 내가 직접 보고 듣고 느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예전의 나는 타인의 눈과 귀를 통하고 타인의 해석을 거쳐 전달받을 수 있던 정보, 인터넷으로 얻을 수 있는 누군가의 감정섞인 사실인지 뭔지도 모를 정보만을 접할 수 있었기에 무엇이 좋은지, 싫은지 하는 판단 또한 잘 알지도 못하는 그들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늘 한정된 정보 속에서 무언가를 판단하는 게 참 어려울 뿐만 아니라 무엇 하나에도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뭐가 좋은건지 싫은건지 알아보고 싶다면 직접 해보고 직접 느껴봐야 한다. 누군가를 통해 듣는 것보다, 내가 직접 보고 듣고 느낀 게 있어야 (그게 올바른 건 아닐지언정) 내가 확신을 가지고 결정할 수 있다. 또 그런 선택에는 자신감이 따르게 마련이다. 이건 '나아가기 위해서는 일단 부딪혀야 한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그리고 정보를 접할 때에는 (특히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길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의 경우) 저 소제목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접하는 모든 말은 정말 진실일 확률이 크지 않다는 것.. 과학적 사실에 관한 게 아니라면 아마 거의 모든 게 그렇지 않을까 싶다.
여정 자체가 보상이다.
어린 시절의 나는 태생부터 공부와는 거리가 먼 환경에서 자라왔다. 주변 그 누구도 공부를 좋아하지 않았기에 나 또한 해보지 않은 공부에 대해 무조건 '공부는 어려운 것'이라며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기피했다. 때문에 내가 뭘 잘하고 못하는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생각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로 고등학교 1학년 늦은 때까지 그 중요하다는 공부를 하지 않는, 인생에 손 놓은 사람으로 살아왔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도 중대한,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된 사건이 하나 있었다. 바로 조남호 아저씨의 영상을 보게 된 일이다. 이 아저씨의 영상을 보고 나서 난 바로 종이와 펜을 들고 수능까지 1년 반 남은 시점에서 어떻게 대학에 합격할지 그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 것이다. 내 삶이 하루만에 변했다고 할 수 있다. 원래 무 목적, 무 계획으로 되는대로 살아오던 나였는데, 그런 삶에 처음으로 크고 긴 목적이 생겼으니 당연히 많은 게 달라지지 않았겠는가. 그리고 그 시점에서부터 수능날까지 내가 보기에도 그 때의 나는 정말 '사는 것처럼' 살았다. 이제 와서 돌아보면 무모하고 어리석었다는 생각이 들지만, 아는 게 별로 없는 그 나이대를 고려하면 그 때의 난 정말 잘 살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충분히 현명하지 못해서인지 나는 입시에 거의 돈을 쓰지 않았고(아직도 그 때 충분히 돈을 쓰지 않은 게 한이다. 그랬다면 지금은 다른 인생을 살고 있지 않았을까? 자주 되돌아보게 된다. 이렇게 후회할 줄 알았으면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투자를 했어야지 싶다.) 그래서인지 충분히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수도 없었다. 하지만 불만족스러운 결과와는 별개로 그 1년간의 짧다면 짧은 경험이 나에게 안겨준 것이 오직 대학 간판만 있는 건 아니다.
당시의 난 마음잡고 공부를 한 게 처음이었다. 그 1년 사이에 무작정 기피하던 '공부'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고, 그 때부터 책을 통해 지식을 습드갈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이건 분명 중대한 발전이라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공부의 필요성이 컸던 시기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요즘은 모든 게 급격하게 변하기 대문에 세상에 잘 적응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배우고 공부하고 자신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내게 만약 그 1년이 없었다면? 대학도 못 갔겠지만, 그와 별개로 어쩌면 난 끝까지 깨어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심심한 어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또, 내가 마음을 먹고 원하는 것을 손에 쥐어 본 경험은 내 삶 전체를 통틀어서 지대한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어떤 사람이 될지는 어디까지 용기낼 수 있는지의 문제라고 했던 사람이 있다. 내가 어디가지 용기내느냐, 그건 사실 과거의 경험과 근거없는 자신감에서 결정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처음으로 목표를 가지고 계획을 세우고 실행한 결과 원하는 곳의 근처라도 가 본 경험은 이런 면에서 매우 중대한 경험이었다. 덕분에 대학에 입학하고 난 뒤 어려 선택의 기로 앞에서 용기를 내어 선택할 수 있었고, (비록 보잘 것 없어보여도) 지금의 내가 된 것이 아닐까.
그러니까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기 위한 나의 여정은 그 곳까지 도달하기 위해 애쓰는 과정 자체가 보상이 되어 돌아왔다.
학벌 컴플렉스
사실 조남호 아저씨의 영상을 보면서 순수했던 나의 뇌는 학벌주의로 물들었다. 꼭 조남호 아저씨 때문만이 아니라 당시의 나는 애써서라도 내 뇌에 그런 사고를 주입시키기 위해 노력했었다. 왜냐하면 그렇게 생각해야만 뒤쳐지는 게 두려워서라도 공부를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학벌주의적 사고에는 그러한 쓰임새가 있었지만, 대학 신입생이 된 뒤부터는 과연 그 사고방식이 내게 득을 주었는지 실을 주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공부를 늦게 시작한 것, 오롯이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울 조성할 수 없었던 것을 고려하면 내가 원하는 곳까지 도달하지 못한 것에 대해 나 자신을 그렇게 탓해서는 안 되었던 것 같다. 매일 나를 탓했던 시절을 지나면서 내 자신이 많이 피폐해진 것을 느낀다.
어쨌든 학벌주의에 넉넉히 절여진 나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것처럼 대기업에는 명문대 출신만 즐비하다는 인식이 있었다. 허나 실제로는 요즘 대기업, 공기업 공채에서는 학교 이름을 블라인드 처리하기 때문에 채용 과정에서 자신의 학교 이름이 드러날 일은 없다고 한다. 그래서 요즘은 옛날과 달리 비 명문대 학생들이 많이 들어온다고는 하지만, 이번에 회사에 새로 들어온 신입사원은 왜인지 명문대 출신이다. 게다가 이 곳에 있는 대부분의 사원은 블라인드제가 시행되기 이전에 채용된 사람들이라 그런지 명문대출신, 유학파가 다수다. 이전에는 몰랐지만 그들의 학벌을 알고 나서 혼자 얼마나 속을 썩였는지 모른다. 학벌 컴플렉스, 어두웠던 신입생 시절을 지나오면서 잠잠해졌다고 생각했건만 다시 살아나고 있다. 이번에는 단지 잠잠해지기를 기다릴 게 아니라,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그 방법을 탐색할 때가 온 것 같다.
그리고 다시 살려내야 한다! 내가 처음 마음잡고 공부를 시작했던 시절처럼, 마음을 다잡고 목표를 향해 중구난방으로 퍼져있는 에너지를 한 방향으로 향하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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