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하고 2주간은 달리 도맡아 해야 할 일이 없다. 파견직이라 따로 교육도 시켜주지 않으므로 매우 지루하다. 첫 일주일은 출근해서 모니터만 바라보다가 퇴근하기를 반복했다. 가만히 모니터만 바라보면 졸리니까 회사 인트라넷을 털어 보자. 게시판에 있는 매뉴얼에는 컴퓨터 세팅 등과 관련한 유용한 정보가 많기 때문에 굳이 다른 사원에게 물어보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고, 회사 뉴스나 보도자료를 보면서 얻게 되는 나름의 인사이트도 있을 것이다. 회사가 속한 산업에 대한 동향이라든가, 회사에서 밀고 있는 사업같은 걸 포함해서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이렇게 다른 사람이 정리해서 알려주다니, 회사에 다니면 저절로 세상 물정에 밝아질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체력을 기르기로 다짐했다
일을 하지 않아도 적응을 하느라 처음 몇 달간은 힘들 것이라고 친구가 말 했다. 정말 그런 것 같다. 9시 부터 6시까지 자리에 앉아있는 건 그 자체로 피곤하다. 항상 일에 신경 써야 하는 정규직을 선택하지 않고 퇴근하면 바로 스위치를 꺼 버릴 수 있는 파견직을 선택한 일이 의미있어 지려면 퇴근 후에는 시험 준비를 해야 했지만, 그러기엔 내 체력이 너무 쓰레기인 것인지 집에 오면 씻고 자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특히 요즘에는 (이러면 안 되지만) 출퇴근 시간에 드라마 미생을 보는 재미에 빠졌다. 꽤나 옛날에 나온 드라마인데, 옛날에는 그런 미래가 내게는 닥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걸 보면 뭔가 두려워져서 미생만 방영되면 채널을 돌리던 때가 있었다. 난 사회공포증(?) 기가 있는 사람이니까 단체생활에 관한 건 전부 두려워하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얼떨결에(?) 그런 상황 속에 들어 있는 나는 그런 삶에도 다 낭만이 있다는 걸 알게된 것 같다. (드라마는 드라마다. 회사 직원들이 상상만큼 치열하게, 자신을 까맣게 불태우며 살지는 않는걸로 보인다.) 먼 훗날에 미생을 다시 꺼내 보며 오늘을 추억할 수 있게 된다면 행복할 것 같아서 일부러 이입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같다. 나에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지~ 하는 생각을 하고 싶다.
갑자기 미생 얘기는 왜 꺼냈냐 하면, 정말 와닿는 대사 하나를 말하고 싶어서다.
네가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 체력을 먼저 길러라. 네가 종종 후반에 무너지는 이유, 데미지를 입은 후에 회복이 더딘 이유, 실수한 후 복구가 더딘 이유. 다 체력의 한계 때문이야. 체력이 약하면 빨리 편안함을 찾게 되고 그러면 인내심이 떨어지고 그리고 그 피로감을 견디지 못하면 승부따위는 상관 없는 지경에 이르지. 이기고 싶다면 네 고민을 충분히 견뎌 줄 몸을 먼저 만들어. 정신력은 체력의 보호 없이는 구호밖에 안 돼.
정말 옳은 말이다. 나는 체력이 딸려서 오후만 돼도 기진맥진해져서 해야 할 일에 집중이 되지를 않는다. 또 집에 오면 씻고 쓰러지는 바람에 2주동안 단 한번도 책을 편 적이 없었다. 이렇게 눌러앉으면 안된다. 아, 피로감을 이기지 못하고 여기에서 멈춰 설 수 없다 정말!
나의 쓰레기 체력에는 운동부족의 탓이 있겠지만서도 밥을 먹지 않는 게 가장 큰 문제가 아닐까 싶다. 근 2년간 밥은 안 먹고 과자로 끼니를 떼운다든가, 하루에 한 끼만 먹고 버틴다든가, 잠을 안 잔다든가 하여간 온갖 나쁜 짓을 저지르며 살았다. 나이가 젊으니 이 업보가 쓰레기 체력으로 돌아온거지, 이 생활을 더 이어가면서 나이가 든다면 어떤 무시무시한 사건으로 돌아올지 모른다. 지금이라도 깨달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밥 좀 꼬박꼬박, 골고루 챙겨먹어야겠다.
입사하고 나서 알게모르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지 입맛이 없어 점심만 먹고 아침 저녁으로 쫄쫄 굶는 생활을 반복했더니 살이 많이 빠졌다. 섭취하는 게 없으니 몸에 영양소가 부족해져서인지 머리가 멍 하고 집중력과 기억력이 무척 감소된 걸 느낀다. 정말로 영양이 심각하게 부족하면 환청이 들리거나 정신상태가 이상해질(?) 수가 있다고 들었다. 하긴, 뭘 먹지 않으면 몸의 모든 기관의 기능이 떨어지는데 뇌라고 안 그러지도 않겠지. 오후만 되면 기진맥진해지고 글이 읽히지 않는 것도 영양부족의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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