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보니 그렇게 됐다.
공학을 전공한 나는 몇 달 전에 졸업을 하고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전공 관련된 일을 하기 싫다. 화이트칼라가 어릴 때부터의 나의 로망이었다.) 매일 밤에 잠을 편히 못 잘 만큼 불안한 나날을 보냈다.
나는 사회성이 0에 수렴하고, 의사소통 능력도 떨어지는 편이라(말할 때 목소리가 작고 발음이 부정확하다. 이 사실을 알게 됐을 때 빠르게 개선했어야 했는데, 방치하다가 사람들이랑 말하는 게 불편한 상황까지 되어버린 케이스다.) 그나마 사회에 잘 적응하기 위해서는 전문성이 요구되는 직업을 선택하는게 옳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나는 일생을 시험 한 방으로 해결하려는 사람이다. 고등학생 때부터 난 정시파이터였고, 대학생 때도 동아리나 대외활동보다는 각종 기사시험, 어학시험, 자격증 시험으로 나의 값을 올리려고 했다.
그래서 전문직 시험을 보는 게 이러한 나의 흐름과도 잘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사회생활에 퍽 도움이 될 것 같아 올 한 해는 시험을 준비할 돈을 모을 생각으로 아무 일자리나 구해 보기로 다짐했다.
(일을 구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닥치는 대로, 눈에 들어오는 대로 지원하면 된다! 나는 이번에 20군데에는 지원한 것 같다. 귀찮은 단계지만, 돈을 생각하며 참자.)
중소기업 인턴, 중소기업 사무보조, 대기업 파견직, (전공 관련된) 중소기업 정규직. 이렇게 최종합격 했다. 인턴은 내 전공과 관련되어 있으면서 사무직이라 만약 일이 잘 풀리지 않아 다시 전공을 살려 취업해야 하는 경우가 생길 때를 대비하여 아주 좋은 선택지였지만, 면접에서도 그냥 처음부터 정규직으로 오라고 했던 만큼 인턴 끝나고 연을 끊는 게 상당히 힘들어질 것 같아 선택하지 않았다. 나는 오래 일할 수 없고 시험을 준비할 시간을 많이 확보해야 했기 때문에 정규직이나, 그걸 예상하고 가야하는 선택지는 지워버렸고, 남은 건 중소기업 사무보조와 대기업 파견직이었는데, 이 둘 중에서의 선택은 쉬었다. 대기업 파견직을 선택했다.
사실 이 때 정말 머리가 터질 정도로 고민을 많이 했다. 하지만 나의 선택이 어떤 선택이었는지는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알게 될 것이다. 지금은 이게 뭔지 절대 모른다.
Tempus est optimus iudex rerum omnium. 시간이 가장 훌륭한 재판관이라는 뜻이다.
동시에 난 세상이 흘러 가라는대로 흐르지 않을 것이고, 내가 이 선택을 최선의 선택으로 만들어 보겠다는 오기가 샘솟았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어떤 선택지를 택하든 그걸 무슨 결과로 만들지는 일정 부분 자신의 손에 달려있다.
일단 대기업에 다니는 사람들은 비교적 열정이 있을 것이고, 또 인성에 문제 없는 사람일 것이다 하는 나의 선입견 때문에, 그런 사람들과 섞이면서 축 늘어져 있는 내가 바짝 긴장되길 바랐다. 그들의 기운을 받아 나도 열정적인 사람으로 물들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말이다.
게다가 오래 전부터 도시의 빽빽한 빌딩에서 사원증을 목에 걸고 열심히 일을 하는 내 모습을 꿈꾸어 왔기 때문에 실속없는 낭만(?)을 이루고 싶단 생각도 많이 했다.
그래서 선택한 대기업. 파견직이긴 하지만 어쨌든 왔다.
배에 올라탄 승객처럼 굳이 돈을 내고 바다에 나기긴 싫고, 책임감과 리더쉽은 그것을 좋아하는 선장에게 맡기고, 뱃멀미를 하는 승객에 신경써야 할 필요가 없는 선원으로서 바다에 나갔던 모비딕의 주인공처럼 말이다!
주변 사람들의 만류
허나 주변 사람들은 이러한 나의 선택을 말리기 일쑤였다. 객관적으로도 그럴 만 하다. 내가 파견직으로 생활하면서 얻은 게 무엇이냐 물어보지 않는다면, "파견직"이라는 이력서 한 줄 감이 플러스 요소가 되기는 어렵다는 걸 나도 안다. 아, 하지만 나는 감성을 배제하고 사실과 논리만을 따져 가며 선택하는 일을 못 한다. 다른 건 몰라도 한 사람의 인생에 대한 선택은 그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살고 있기도 하다.
비록 이력서에는 적을 수 없는 것이긴 해도, 입사한지 2주차가 되어가는 지금 시점에서도 난 얻은 게 벌써부터 한아름이다.
예상했던 것과 같이 열정있는 사람들, 금전적 여유 때문인지 뭔지는 몰라도 어딘가 온화한 상사, 쾌적한 근무환경, 점심시간에 사원증을 목에 걸고 고층 빌딩 숲을 전전하는 나의 모습, 심지어는 예전 같았으면 안쓰럽게 생각했던, 화물 실어가듯 사람들을 빽빽하게 채워 실어 나르는 지하철 속에 들어있는 내 모습마저도 멋져 보였다. 학교 졸업하고 나서 몇 개월동안은 없어서 불행했던 그 소속감, 또 만족감이 충만하다. 그래서 난 (아직까지는) 참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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